금성당 소개
하늘과 땅을 잇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곳
- 국가민속문화재 제258호
- 금성당(錦城堂)
- 금성당(錦城堂)은 전라도(全羅道) 나주(羅州) 금성산(錦城山)의 금성대왕(錦城大王)과 세종대왕의 여섯째아들 금성대군(錦城大君) 그리고 여타의 신(神)을 모신 신당(神堂)이다. 고려 왕실에서는 금성대왕을 숭상하는 제례를 위해 매년 제물과 제문을 내리고 나라의 태평성대와 백성의 안녕을 빌었다. 금성신앙(錦城信仰)이 서울에 입성하자 조선왕실은 진관동, 망원동, 월계동 세 곳에 세워진 금성당(錦城堂) 건립을 후원하였다. 이후, 조선 후기에 이르러 세종대왕 여섯째아들 금성대군(錦城大君, 1426-1457)도 금성당의 영험한 신으로 모셔졌다.
- 서울 지역 금성신앙은 1970년대부터 불어닥친 도심개발로 옛 자취를 모두 감추고 지금은 진관동 금성당만 유일하게 남았다. 진관동 금성당에서는 옛 전통을 이어받아 매년 봄가을 웅대한 규모의 금성당제(錦城堂祭)를 개최하여 이말산(莉茉山, 132.7m)에 묻힌 궁인을 추모하고 더불어 나라의 태평성대와 시화연풍 그리고 지역민의 부귀영화와 대동단결을 축원한다.
- 금성당 건축연대는 19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전국의 많은 신당(神堂)이 사라진 현 상황에서 옛 신당 모습을 고스란히 볼 수 있는 금성당은 매우 중요한 건축적 가치를 지닌다. 금성당의 구조는 본채와 안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본채는 금성대왕 등 여러 신을 모셔두고 의례를 베푸는 신당이다. 본채 앞으로는 행랑채를 두었다. 본채 동쪽에는 ‘ㄱ’ 자형 안채를 두어 시봉자가 생활하였다. 안채 형태는 중부지방 민가와도 같은 ‘ㄱ’자 형이며, 동쪽 방은 ‘전(田)’자 형태로 크게 지은 것이 특징이다.